지리산을 걷다⑦ 늘 봄만 같아라, 꽃길만 걷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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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걷다⑦ 늘 봄만 같아라, 꽃길만 걷고 싶어라
  • 최은영 기자
  • 승인 2020.03.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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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물’ 만큼 봄날의 섬진강을 잘 표현한 시어가 있을까. 물길따라 꽃길따라 그렇게 걷다보면 겨우내 갈증 나던 마음이 ‘봄물’ 로 젖어든다. 

아주 오래전 섬진강변을 따라 하동읍내에서 화개장터까지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길은 마을을 지나기도 하고, 잠시 강둑을 만났다가 다시 마을로 접어드는 길이었다. 4차선의 넓은 도로도 없던 때고 차와 인도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았던지라 온전히 섬진강을 느끼기보다는 하동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에 만족하던 길이었다.

근래에는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라는 이름으로 섬진강변길 정비사업을 완료하면서, 오롯 이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섬진강을 걸어보기는 참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에 첫 걸음을 뗐다. 

100리 테마로드는 섬진강 천 년 녹차, 은모래, 두꺼비 바위, 팽나무, 돌티미 전망, 하동 나루 같은 특색 있는 테마 쉼터 12곳을 조성하여 아름다운 섬진강을 조망하면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평사리공원, 지리산생태과학관, 화개장터 등 주요 관광지를 두루 둘러볼 수 있어 섬진강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이번 코스는 화개 장터에서 평사리공원까지 약 9km 구간을 걷기로 했다. 전염병으로 시국이 어수선한 때라, 평소엔 상춘객들로 북적을 길이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꽃피고 물 흐르는 화개. 봄은 언제나 오고, 강물 은 멈추지 않는다. 왼편에는 매화가 활짝 만개하고, 오른편에는 물의 흐름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한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대숲 사이를 지났다가, 소나무 사이를 지났다가, 매화밭을 지났다가, 강모래 위를 걸었다가, 길은 그렇게 반복된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걷다가 조금 질릴 즈음 강변으로 내려가 본다. 모래 깊숙이 발을 들이다 보면 강물을 차올리며 비상하는 새들과 마주할 수 있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 ‘봄날’

섬진강과 지리산은 신선들과 유랑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자, 굳은 절개와 기개를 지닌 이들이 은거하며 뜻을 세우던 곳이기도 하다. 그 중 섭바위(섯바위)는 고려 무신정권 말기 한유한이 고려가 혼란해질 것을 예견하고 처자식을 데려와 은거하며 낚시로 소일하던 바위다. 후에 조정에서 그를 찾았지만, 그는 망해가는 고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사라졌다고 전한다. 

남명 조식 선생이 훗날 <두류유록>에서 기록한 바에 의하면 “아! 국가가 망하려 하니 어찌 어진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있겠는가. 어진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착한 사람을 선양하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섭자고(葉子高)가 용을 좋아한 것만도 못하니, 나라가 어지럽고 망해가는 형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술을 가져오라고 하여 가득 따라놓고 거듭 삽암을 위해 길게 탄식하다” 며 한유한을 기록하고 부조리한 시대에 맞서며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를 추도했다. 지리산은 사연이 많은 곳이다. 오늘의 우리가 기록을 통해 과거를 돌이키듯, 과거의 누군가도 그 과거의 사연을 통해 삶을 배워갔을 것이다. 꽃 피고, 강이 흐른다. 어제의 이야기 속에 화개의 봄이 만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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