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무성한 사찰에는 자연을 만끽하러 나온 관광객들로 아침부터 활기를 띤다. 그 사이 갈색의 법복을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포교사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범어사를 장엄하고 있는 푸른 노송 사이로 바삐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이 흡사 노송의 뿌리와 같이 느껴진다. 이들의 맡은 바 소임 또한 재가불자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라 일컫고 싶다. 매주 일요일 대덕 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청해 듣는 대중법석을 여는 사람들. 범어사 포교사들로 구성된 ‘범어사 일요법회’다.

 

지난 3월 19일 창립 17주년을 맞은 범어사 일요법회.

지난 3월 범어사 일요법회가 창립 17주년을 맞았다. 이날 열린 법석은 지난 한 해 동안 일요법회의 법상에 오른 법사 스님들의 법문을 한데 엮은 법문집을 발간해 법공양으로 회향하며, 재가 불자들이 이끄는 대중법회의 저력을 과시한 자리이기도 했다.

범어사 일요법회는 2000년 1월 재가 불자들이 나서 수행과 포교를 이끌 모임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범어사 교수사인 홍선스님의 조언으로 탄생한 신행단체다. 그해 3월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포교사회 주관으로 일요법회를 창립, 매주 불교 경전을 독송하며 포교사회, 염불봉사회 등을 발족해 수행과 봉사를 함께 실천해 왔다. 범어사 포교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일요법회는 현재 사중에서 중요한 대중법회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했다.

 

범어사 일요법회 제16대 이종찬 회장.
  • 매주 일요일 대중법석을 여는 사람들

창립 17주년을 기념하는 법석에서 일요법회 제16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종찬 회장은 “오직 신심 하나로 모인 불자들의 저력”이라며 일요법회를 소개했다.

현재 150여 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는 범어사 일요법회는 전국 각지 대덕 스님들을 초청하여 불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법석을 마련하고 있다. 법사 스님으로는 조계종단뿐만 아니라 천태종, 태고종 등 타 종단 스님들도 모시며 종단의 구분을 깨뜨렸다. 일요법회가 조계종단뿐만 아니라 타 종단의 스님들까지도 구분 짓지 않고 모시게 된 데에는 ‘차별’을 지양하고 ‘화합’을 지향하는 주지 경선스님의 가르침도 한몫했다.

“주지스님께서는 포교사들에게 늘 당부하십니다. 나를 위해 사는 이는 중생이지만 남을 위해 사는 이는 불보살이니 불자로서 지녀야 할 덕목 중 대자대비 한 보살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일요법회의 본래 취지가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저마다 마음속에 불국정토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스님께서 이르시는 중생, 보살이라는 생각마저 놓아 버리면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깊은 뜻을 새기며 우리 포교사들은 일상생활에서든 신행생활에서든 중도적 정견을 가지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연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대중법회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

누구든 법당에 앉아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열려 있는 대중법회인 일요법회에는 매주 평균 100여 명의 불자가 참석하고 있다. 한 주의 끝자락인 일요일에 매주 법회를 열어 대중들을 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법당에 좌복을 일렬로 나열하는데 좌복이 모자랄 정도다. 이렇게 많은 대중을 동원하는 힘에 대해서 물었더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잊지 않고 다시 기억하는 마음”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법회 시작 전 부처님 전에 공양물을 올리는 모습.

이 회장이 취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요법회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들의 명단을 취합하는 일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일요법회에 동참한 이들과 맺어진 ‘인연’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 대중법회를 이끌어 가는 데 가장 필요한 ‘초심’이라 생각했다고.

법회 때마다 회원 가입의 부스만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연락을 통해 매번 새로운 법사 스님 초청 소식을 알리고, 법회 동참을 권유하며 일요법회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이상의 친절함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나를 기억해 주고 있다.’는 배려를 전하기도 하므로.

창립 17주년을 맞아 법사 스님들의 법문집을 나누는 모습.

일요법회의 주축이 되는 포교사들도 입을 모아 일요법회를 “인연 짓는 곳”이라 지칭한다.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게 되는 사회와 달리 일요법회는 부처님 법을 듣고자 하는 신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펼치는 불법 현장입니다. 이곳에서는 오직 불자라는 사실만으로 모두가 인연을 지어 함께 불법 홍포에 동참하는 것이지요. 저마다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마음에 불국토를 지을 수 있도록 화합하는 뜻깊은 법석입니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표창장을 받는 포교사들.

일요법회 안에서도 주축이 되는 13명의 범어사 포교사들은 법회 준비뿐만 아니라 ‘포교사’라는 맡은 바 소임에도 최선을 다한다. 이 회장이 취임 한 후 포교사회 안에서 각기 나누어져 있던 부서를 모두 해체하고 모든 이들이 ‘봉사단체’로 결집 되었다. 법회 이외에도 일요법회 회원들을 위한 축원, 장엄염불 등을 통해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 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화합’, 보살의 길로 나아가는 근본

올해 일요법회의 목표는 늘 그래 왔듯이 ‘화합’이 우선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의 본뜻을 좇아 위로는 스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신심으로 모인 불자들을 교화하여 다함께 보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일요법회의 근본이다. 부처님의 정법을 전하겠다는 17년간의 굳은 의지가 앞으로도 불자들의 신행생활에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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