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한국전쟁 중 육군병원 입증 자료 발견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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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한국전쟁 중 육군병원 입증 자료 발견돼
  • 곽은영 기자
  • 승인 2019.10.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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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 복장유물 공개
약 2년간 제31육군병원으로 역할 다해
2020년 한국전쟁 70년, 수륙고혼천도재 계획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문과 미륵상생경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문과 미륵상생경

한국전쟁 당시 통도사에 제31육군병원이 설치돼 3000여 명이 넘는 부상병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통도사 용화전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문 스님)는 최근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던 도중 1952년 한국전쟁 기간에 조성된 연기문과 함께 다라니 4점, 미륵상생경1권이 종이로 감싸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발견된 자료들 중 구하 스님의 붓글씨로 작성된 ‘용화전 미륵존불갱조성연기문’에는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통도사로 들어와 1952년 4월 12일 퇴거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통도사에 육군병원이 설치됐으며, 1952년 4월까지 약 2년 간 운영됐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연기문에 따르면 “경인년 6월 25일 사변 후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해 2979년 임진 4월 12일에 퇴거했다”며 “각 법당과 암자가 말할 수 없을 만큼 피폐됐고 용화전 미륵불이 심하게 파손돼 자운 율사와 월국 선사의 모연 아래 새롭게 조성했다”는 기록이 담겨있다.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은 “그동안 어른 스님들로부터 통도사가 한국전쟁 당시 육군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이번 연기문이 발견되면서 어릴 때 스쳐지나갔던 이야기들이 다시 정리가 됐다”며 “당시 통도사에는 3000명이 넘는 상이병들로 법당과 요사는 물론 산내 암자까지 가득 찼으며 매일 10여 명의 군인들을 화장 할 만큼 많은 부상병들이 통도사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또한, “올해 100세를 맞은 월저 김진조 의학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이 용화전을 비롯한 전각을 군홧발로 드나들고, 심지어 불상 앞에 재떨이를 놓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종이로 만든 경책은 불쏘시개나 휴지로 사용했으며, 당시 텃밭이었던 현재 설법전 자리에서 군인들이 소를 잡아먹는 등 통도사 경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었다”고 말했다.

이 무렵 통도사에 전해오던 다수의 불상과 경판, 문헌 등 성보문화재가 혼란 속에 유실되거나 훼손됐고, 이후 이승만 박사가 상이병 위문을 위해 통도사를 방문했을 때 당시 주지 최대붕 스님이 이러한 사실들을 전했다. 인천상륙작전 등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통도사의 군병원은 동래로 이전하게 됐다.

현문 스님은 “한국전쟁 가운데 미륵불상을 조성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군인과 국민들이 전쟁으로 입은 상처가 하루 빨리 치유되고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모셔진 불상이었음을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선대 스님들께서 부상병을 치료하고 돌보는 등 나라가 어려울때면 항상 호국불교로서 역할을 다했던 기록이 국가적 차원에서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통도사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인 내년에 한국전쟁과 관련된 참전용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나라를 위해 산화한 이들을 위한 수륙고혼천도재를 봉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도사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
통도사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

한편, 통도사 용화전은 영조 원년 1725년 청성대사에 의해 중건됐으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돼 있다. 불상은 흙으로 빚어 조성한 미륵불소조좌상이 모셔져있고 소조로 만들어진 불상은 좌대와 일체형으로 높이 195cm, 폭 165cm의 크기에 호분을 칠한 미륵불좌상이다.

 

다음은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문 전문.

龍華殿彌勒尊佛更造成緣記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

佛紀二千九百七十七年庚寅六月二十五日事變後國軍傷痍兵三千餘名이入寺하야 
불기이천구백칠십칠년경인육월이십오일사변후국군상이병삼천여명이 입사하야

二九七九年壬辰四月十二日에退去則寺刹各法堂各寮舍各庵全部頹敗는不可形言中龍華殿彌勒佛은永爲破損되야不可見餘에慈雲盛祐律師와月國晶基禪師가曁募檀緣하고寺中이應助햐야新造佛像也
이구칠구년임진사월십이일에 퇴거칙사찰각법당각료사각암전부퇴패는 불가형언중용화전미륵불은 영위파손되야 불가견여에 자운성우율사와 월국정기선사가 기모단연하고 사중이 응조햐야 신조불상야

證明比丘  慈雲盛祐 大峯惟一
증명비구  자운성우 대봉유일

良工比丘  漢翁倫澤 會應尙均
양공비구  한옹륜택 회응상균

監督比丘  椿皐澤彦 月湖學周
감독비구  춘고택언 월호학주

持殿兼都監比丘  月國晶基
지전겸도감비구  월국정기

化主  白月琮基
화주  백월종기

本寺三職  住持 大鵬善炯 주지 대붕선형
             總務 包光奇憲 총무 포광기헌
             財務 鏡河達允 재무 경하달윤

時大衆五百餘名 시대중오백여명

檀紀四二八五年九月 단기사이팔오년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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