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눈치 상영에 보기 힘든 ‘나랏말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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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 눈치 상영에 보기 힘든 ‘나랏말싸미’
  • 곽은영 기자
  • 승인 2019.08.07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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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스님 향한 조명이 아니라 한글 창제의 다양성 열어두는 역사 확장
사찰별 노력, 단체관람 상영으로 이어가

지난달 24일, 개봉 첫날부터 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영화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가 때이른 종영 위기에 처했다. 

임금 세종과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그린 영화 ‘나랏말싸미’는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한 시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마지막 8년을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실제 한글 창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실존 인물인 '신미 스님'을 브라운관으로 끌어들인 감독의 참신한 시도가 일부 학자들과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비난의 중심에 오르며 상영일정이 급하게 마무리 되는 실정이다. 또한 누리꾼들 사이에서 별점테러(의도적으로 영화의 별점을 0점으로 매겨 평점을 낮추는 행동)가 이어지며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를 저해하고 악의적인 행태도 보이고 있다.

이에 극장가에서는 눈치보기식으로 영화의 종영을 앞당기거나 상영시간을 이른 오전, 혹은 심야 시간대에 배치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더욱 좁게 만들었다. 심지어 개봉 2주차 8월 7일에는 부산대 메가박스(부산 지역 내) 단 한곳에서 1회 상영 일정이 잡혀있다.

 

8월 5일 부산 홍법사가 영화 '나랏말싸미' 단체관람을 다녀왔다.
8월 5일 부산 홍법사가 영화 '나랏말싸미' 단체관람을 다녀왔다.

이에 그동안 불교계에서만 거론되고 있었던 신미스님에 대한 역사적 조명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과 불자들에게 적지않은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부산 불교계에서는 한마음선원 부산지원(지원장 혜도 스님)을 비롯해 미타선원(주지 종호 스님), 홍법사(주지 심산 스님), 해광사(주지 태공 스님) 등 각 사찰을 중심으로 영화 ‘나랏말싸미’ 관람 운동을 이어가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5일 단체 관람을 다녀온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은 “영화를 보면 신미 스님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는데 조력자의 역할로 등장한다”며 “한글창제에 있어 그러한 조력자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역사이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우리 역사를 한 번 더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조현철 감독은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 7월 29일 진심이 담긴 장문의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 감독은 “이 영화는 세종대왕이 문자를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고뇌와 상처, 번민을 딛고 남은 목숨까지 바꿔가며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들어낸 그의 애민정신과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군주로서 위대해져 가는 과정을 극대화한 것”이라며 “세종대왕께서 혼자 한글을 만드셨다 하더라도 그 내면에서 벌어졌을 갈등과 고민을 드라마화하려면 이를 외면화하고 인격화한 영화적 인물이 필요한데, 마침 신미라는 실존 인물이 그런 조건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기에 채택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선왕조실록에 1443년 12월 30일 임금이 친히 새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록 이전에 아무것도 없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의 역사적 공백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신미는 그 공백을 활용한 드라마 전개에서 세종대왕의 상대역으로 도입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미의 동생이자 집현전 학사이기도 했던 김수온의 문집 《식우기》 중 ‘복천사기’에는 세종대왕이 신미를 산 속 절로부터 불러내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기록이 있으며, 실록에도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신미대사를 스승처럼 모시고, 세종대왕이 죽기 두 달 전 침실로 불러 법사(法事)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세종대왕은 유언으로 신미스님에게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라는 칭호를 내리기도 했으며, ‘우국이세’라는 칭호는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라는 뜻으로, 공적이 분명한 대신과 장상에게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미스님이 쓴 상원사 문수전 중창기문 영인본(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신미스님이 쓴 상원사 문수전 중창기문 영인본(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영화속 신미스님은 세종에게 꾸짖는다. 소리 글자를 만들려고 하면서 어찌 뜻 글자인 한자에 얽매여 있느냐고. 우리는 영화를 통해 가능성을 본다. 그것은 사실일수도, 허구일수도 있다. 그러나 집현전 학자들만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한글 창제의 과정 속에서 한 스님의 노력이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역사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자 함이다. 그것은 뜻 글자에 얽매여 있던 유학자들의 관념에서 벗어나 소리 글자 연구의 가능성을 연 신미스님의 존재이다.

"복숭아 하나에 씨가 몇개인지는 누구나 알지만 복숭아씨 하나에 몇 개의 복숭아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신미스님의 대사 속에 얄팍한 극장가의 상술과 일부 종교인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에 대한 일갈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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