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천을 따라 쌍계사로 가는 길엔 곳곳에 골짜기가 많다. 늘 다니던 길로만 가다 보니 그 골짜기 안에 숨겨진 평화로운 풍경을 자주 놓친다. 지리산을 어머니에 비유하곤 하는데, 나는 그 이유가 치마폭 같은 산자락의 형세에 있다고 본다. 두툼한 겨울 한복 치마를 넓게 펴고 인자하게 아이를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 곱게 다려진 치마는 매끄러운 곡선으로 굴곡지고, 그 골 사이에는 따스한 햇볕이 스미는 풍경. 그래서 화개천을 중심으로 지리산 자락은 자연스럽게 계곡과 맞닿으면서도 안온하게 펼쳐져 있는 엄마의 치맛자락과 가장 닮아 있지 않은가 싶다.

정금리도 그중 하나이다. 화개천을 따라 쌍계사로 가다 보면 우측에 정금리로 가는 길이 있다. 마을 입구는 좁은 느낌인데, 막상 들어가면 넓게 펼쳐진 차밭이 눈에 들어온다. 근래에 하동이라 하면 단연 차를 떠올린다. 물론 역사적으로도 하동은 차의 발상지이며, 오랫동안 차향을 품은 차의 고장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깎아 만든 듯한 차밭을 보면 인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하동이 차로 유명해지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산을 깎아 내고 차나무를 심기 시작했기에,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요즘엔 차의 유행이 끝나면서 차밭을 다시 고사리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도리어 하동의 차 역사가 퇴보하고 있는 느낌까지 든다.

하동,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정금리에 잘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냉해를 입고 고사해 버렸지만, 경상남도 기념물 제264호로 지정된 정금리 차나무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개면 정금리 산74번지 회강이골 높은 언덕에 있으며, 차나무의 수령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략 500년에서 10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천년차나무라는 애칭으로 정금리 차나무를 아끼고, 이곳에서 다례재를 올리며 예를 갖춘다. 지금은 고사한 나무를 박물관으로 옮기고, 그 곁에는 후손으로 추정되는 작은 차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한 그루의 나무뿐만 아니라 정금리에는 야생 차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야생 차나무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 곱게 다듬어진 모습은 안락하고 편안한 엄마의 초록 한복자락을 그대로 닮아있다. 이 풍경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얼마 전 있었던 작은 소란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정금리 전체를 댐에 가둘 뻔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나 지리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근래 하동에는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들은 지리산의 풍경을 좇아 이곳에서 은거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좋은 풍경을 갖기 위해 시야를 가리는 나무는 밀어내고, 삶의 편리를 위해 푹신한 흙바닥을 시멘트로 메우고 있다.

정금리의 풍경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야생 차밭을 사람의 손으로 일구고, 또 다시 옆에 새로운 차나무를 조성하는 와중에도 천년차나무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지리산의 향기를 품어 왔다.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단순히 초록을 보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상징하고 본래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마치 천년차나무 한 그루가 정금리 차밭 전체를 고즈넉한 역사의 풍경 속에 함께 품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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