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에 오갈 때 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반짝이는 섬진강과 유연한 능선이 주는 설렘이다. 또 하나는 하루가 달리 변하는 발전된 하동이 주는 애석함이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주는 아쉬움은 너무나 크다. 마을을 지나다니던 굴곡진 옛길 대신 시원하게 뚫린 길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했는가. 속도를 내지 않고서는 달릴 수 없는 길 위에서 옛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속앓이하면서도 나 역시 시간을 단축하고 풍경을 단축하며 지나간다.

지리산 자락 어느 한 곳 개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차가 아닌 두 다리를 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흥마을은 지난번 걸었던 서산대사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특히 이 신흥마을은 최치원 선생과의 인연이 깊다. 큰 바위 위에 영신, 의신, 신흥을 이르는 ‘삼신동’이라는 친필 휘호를 남긴 것으로 보아 지리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현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는 원래 신흥사가 자리하던 곳이다. 신흥사에 대한 흔적은 부도 1기와 서산대사가 남긴 「頭流山 新興寺 凌波閣記(두류산 신흥사 능파각기)」에서 찾을 수 있다. 수평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지리산의 곡선이 주는 편안한 안대는 가히 천하 명지다.

왕성분교 초입에는 큰 푸조나무가 있는데, 최치원이 심은 지팡이에서 자랐다는 나무다. 그만큼 옛 도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곳이 바로 이 신흥마을이다. 화개천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세이암과 탁영대가 있다. 세이암은 최치원 선생이 새긴 각자이고, 탁영대는 탁영 김일손이 새긴 각자다.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는 두 곳은 서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세이암은 속세를 버리고 입산한 최치원 선생이 어느날 사신으로부터 국정에 관한 얘기를 듣고서 화개천에 귀를 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든 것을 씻어 버리고 환귀본처의 삶을 찾겠다는 선생의 강한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김일손이 깃쓴을 씻은 탁영대

세이암에서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면 탁영대가 있다. 이곳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일손이 지리산을 유랑하다 자신의 몸을 맑게 하고 세상을 깨끗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전서체로 탁영대라는 글자를 새겼다.

똑같은 계곡에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뜻의 글자를 새겼다. 최치원은 세이암에서 귀를 씻고서 입산해 신선이 되었다. 또 김일손은 춘추관의 사관으로 관직에 나아가 여러 비리를 사실 그대로 사초에 실어 이후 사형에 처해지는 삶을 살았다. 김일손의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남명 조식은 그를 두고 “살아서는 서리를 업신여길 절개가 있었고 죽어서는 하늘에 통하는 원통함이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결국 세속의 때를 씻고자 했던 최치원이나 세속의 더러움을 직접 씻어내겠다고 나선 김일손이나 이곳 화개천의 청량함이 세속의 오탁을 맑게 해 주리라 믿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듯 같은 두 사람의 뜻이 통한다.

화개천은 여전히 아름답다.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주변을 둘러봐도 오직 지리산의 능선이 유일한 벗이 되어 준다.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도 이렇듯 맑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그저 어느 집의 서까래로 쓰이고, 어느 집의 축대로 고이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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