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시배지를 지나 정금차밭으로 가는 길이 있다. ‘천년차밭길’. 지리산 둘레길의 가장 큰 강점은 왼편의 풍경과 오른편의 풍경이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왼쪽으로 대나무숲을 끼고 돌면, 오른쪽에는 지리산맥이 펼쳐진다. 좌우가 다른 풍경이니 길손에겐 양손에 보배를 얻은 셈이다.

천년차밭길을 한참 걷다 보면 중간쯤 특별한 포인트가 있다. 둘레길은 전체적으로 고도가 높은 편이 아닌데, 중간 지점의 한 길목은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지리산 주봉을 만날 수 있는 포인트다. 지리산은 모든 것을 보듬어 품는다고 하니, 이곳에 서면 지리산의 품안에 내가 들어와 있음을 실감한다.

곡우가 지난 시점이라 머리를 싹 깎아 버린 차밭이 눈에 띈다. 보성차와 비교하면, 하동차는 키가 작은 편이라 나지막한 멋이 있다. 나무 사이의 골이 깊지 않으니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느낌보다 오히려 드넓게 펼쳐져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하다.

경사가 없는 길을 한참 걷다 보면 다시 쌍계사로 올라가는 길목과 만난다. 30분, 한눈에 지리산을 담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이래서 걸어 봐야 안다. 걸어 봐야 지리산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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