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를 즈음해서 나오는 햇차는 단연 최고의 향과 맛을 낸다. 하동은 차 산지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지만, 실은 오랜 차의 역사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시대 때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일대에 처음으로 심었다고 전하는데, 바로 그곳이 하동이며 쌍계사와 나란히 터를 잡은 현재의 차 시배지이다.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일대 12km에 걸쳐 뻗은 차 밭은 녹음이 그리운 방문객들에게 시원한 풍경을 선물한다. 흔히 차의 맛은 찻잎에 있다고들 하지만, 실은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맛이 나온다. 사람의 손을 타고 거름을 많이 먹은 차나무는 뿌리가 옆으로 뻗는데, 야생 차나무가 아래로 깊게 뿌리를 내리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야생 차나무의 깊은 뿌리는 맛과 향이 더욱 짙다.

시배지의 야생 차나무가 1300여 년의 생을 거듭하며 만들어 낸 차의 성질이야 오죽하겠는가. 시배지로 조성된 구역은 넓지 않아 가볍게 걷기에 좋다. 쌍계사 입구에서 내려와 화개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시배지 입구에 닿는다. 정자의 기둥을 액자 삼아 지리산을 내다본 후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가 본다. 오른편에는 차밭을, 왼쪽으로는 지리산의 풍경을 담는다. 조금만 더 걸어 오르면 대숲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대나무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죽로차를 만날 수 있다. 

시배지의 차나무 사이에는 쌍계총림 방장 고산 대종사의 동다송이 새겨져 있다. 30분 내외로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는 차향을 느끼고, 동다송을 음미할 수 있는 쌍계사의 숨겨진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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