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눈부신 여름, 연둣빛과 초록빛을 띠며 저마다 상생하여 함께 푸르다. 얼마 전 꽃의 시샘도 육근(六境, 경계)의 대상에서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저마다 하얀 저고리에 꽃 한 송이 달고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나눈다. 누가 봐도 자매의 향이 짙게 퍼지는, 두 손 꼭 잡고 법당으로 향하는 이대승화, 이홍로설 자매이다.

홍로설 도반의 큰언니인 대승화 보살님은 선방에서 수행한다. 둘째 언니 자연예 보살님은 선다향에서 차를 배우다 손주를 돌보게 되어 서울로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되었다. 홍로설 도반은 혜원정사와 인연을 맺게 된 지난 이야기를 웃으며 꺼냈다.

“2005년 혜원정사 불교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홍로설’이라는 불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심이 깊지 않았어요. 경전 독송이 좋다고 하면 독송을 하고, 다라니가 좋다고 하면 다라니를 따라했지요. 한결 같이 수행하지 않으니 번뇌와 망상이 가득해서 마음 챙김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홍로설 도반은 초심자 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지 못해 방황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부처님의 가피를 느끼게 된 계기는 바로 ‘가족’이었다고.

“그렇게 쉬엄쉬엄 절에 다녔는데, 자식들 시험이 눈앞에 닥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더군요. 아들 하나와 딸이 둘 있는데 아이들 대학수능시험 때 엄마로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위해 수능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부처님 가피를 느낄 수 있었지요.”

자식들의 밝은 앞날을 위한 원력을 세우고 일심으로 기도에 들어서니 그때부터는 기도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청정 기도로 자식들은 현재 각기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큰딸은 서울 육군본부 소령이고, 사위도 같이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은딸은 미국에서 공부하며 육군 대위 남편과 잘 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식들을 만나러 자주 미국에 가곤 합니다. 막내아들도 공무원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잘 해내고 있지요.”

거사님은 어떠한지 여쭈어 보니 “그냥 전원생활합니다.” 하고 마는 홍로설 도반 옆에서 큰언니가 말을 덧붙인다. 사실은 시인이라며 제부 자랑을 아끼지 않고 언니인 대승화 보살님이 거든다. 거사님은 문단에서 활동하다, 지금은 시골로 내려가 조용히 작품 활동을 하며 주말 부부로 만나고 있다고.

“아파트를 팔고 혜원정사와 가까운 주택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새벽 예불과 사시불공, 저녁 예불 소리가 집에서도 들리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집에 있을 때면 ‘주지 스님, 총무 스님, 부전 스님’ 하며 염송을 하곤 하지요.”

홍로설 도반은 절에 올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독송’을 빠트리지 않는다. 그 역시 ‘가족’이 원동력이 되었다.

“집에서는 주로 금강경을 한 편씩 독송하고, 백중에는 지장경을 독송합니다. 가족 중에 큰 형부와 작은 형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육화전에 형부 위패를 올리고 언니와 함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켜서 손주들의 귀여움에 외롭지 않게 잘 살고 있지만, 처음에는 많이 외로워했지요.”

신행생활이 없었던 삶을 회상하던 자매는 스님의 도움으로 각기 염불과 참선에 주력하면서, 마음의 본성은 공함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도에 물꼬를 트니 뒤이어 보시와 봉사, 참회 기도를 하면서 신심을 더욱 두텁게 쌓을 수 있었다고.

“살면서 매일 한 가지 이상 선행을 하여 팔관재계 서원록에 기록할 수 있도록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닮도록 실천하려고 합니다. 요즘은 사경을 하며 정진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란 단어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이 들어앉아 있다. 좋은 일은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힘든 일에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기에 가족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매우 귀한 것이다. 자매는 가족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 올곧은 신행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선하게 다가오는 대승화, 홍로설 도반을 혜원의 도량에서 오래도록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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