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무엇이며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동안 명상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았고 삶의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러한 경험과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그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명상은 긴장감을 내려놓고 깨어난 감각을 통해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는 일상에서 느끼는 것과 조금 다른 것을 느낀다. 무심코 지나쳤던 나에 대해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명상을 하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만 효과가 있지만, 점차 숙달이 되고 자연스러워지면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노트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나는 누구인가? 80을 넘긴 한 생을 산 내가 새삼스럽게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왜?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오늘에 이르러 남다른 삶을 살게 했는지 나름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다.”법정 스님도 생전에 나에 대해 물을 것을 강조하셨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묻지 않고는 그 해답을 이끌어
“심플한 삶은 아름답다. 심플한 삶은 적게 소유하는 대신 사물의 본질과 핵심으로 통한다. 심플한 삶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너무 많이 소유하려는 것을 멈추자. 그러면 자신을 돌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필요한 물건보다 더 많은 소유하는 것은 곧 새로운 불행을 짊어지는 것이다.”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중에서)요즘 심플한 삶에 대한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단순한 것의 가치에 비중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반하여 정신문명이 퇴보해가는 흐름 속에서 반가운
우리나라의 도로통행은 일반적으로 오른쪽(우측) 통행이 원칙이다. 따라서 도로는 어디를 가든 우측통행일 거라는 선입관을 가지게 된다. 물론 세계에는 이처럼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한 교통체계를 도입한 국가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 태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비롯한 과거의 혹은 현재 영연방국가들의 여러 나라에서는 교통체계가 좌측통행을 원칙으로 하여 도입되어 있다.그럼, 왜 좌측통행이 되었을까? 영국인들에게 물으면 영국사람들은 왼손잡이가 많아서 일거라고 하기도 하고, 일본인에게 물으면 (일본인은 원래 오른손잡이
현대 일본의 환락가의 대표주자로 동경의 긴자(銀座)거리와 교토의 기온(祇園)거리를 꼽는다. 긴자거리가 현대식 유흥가인 반면 교토의 기온거리는 하얀 분칠을 한 채 기모노(일본의 민족의상)를 입은 전통적인 일본기생이 출몰하는 술집거리로 유명하다.그런데 교토의 게이샤는 버블경제 절정기에만 하더라도 그 지망생들이 많았고 그들은 게이샤라는 직업에 대해 상당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지원하였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장래희망 중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였다. 가장 일반적인 패턴이 소학교(=초등학교) 중퇴 혹은 졸업 후 견습생으로
『불을 타오르게 하는 것은 장작 사이의 공간 숨 쉴 공간이다. 너무 많은 좋은 것 너무 많은 장작을 바싹 붙여 쌓는 것은 오히려 불을 꺼뜨릴 수도 있다. 한 바가지의 물이 거의 틀림없이 불을 꺼뜨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러므로 불을 피울 때는 나무뿐 아니라 나무 사이의 공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주디 브라운(Judy Brown)쉰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이자 중요한 가치이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활동하며 주변과 교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며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
명상(瞑想, Meditation)은 나에게 늘 큰 힘이 되어 준다. 평소에는 그 필요성을 잘 모르다가 힘이 들 때 더 찾게 되어서 일까. 이젠 나의 힘든 순간을 늘 함께 해주는 벗이 되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마음은 우울하고 짜증이 나고 몸은 힘들고 지치게 된다. 이때 명상은 그 모든 문제를 사라지게 해준다. 명상을 배우기 전에 명상은 아주 어렵고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나름대로의 휴식법과 운동과 독서 등 여러 가지 여가생활로써 공부에 지치고 사람들에 치인 몸과 마음을 극복해 나갔다.나중
얼마 전에 한국의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친구와 그의 제자들이 교토를 들렀다. 그 친구를 비롯한 일행이 시를 쓰거나 예술을 하면서도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도이기도 하여 다른 관광명소는 제쳐두고 ‘철학의 길(哲学の道)’을 들러 고쇼(御所=왕궁) 맞은 편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구내에 ‘윤동주 시비’를 보러 갔다. 타 대학에 강의를 가거나 할 경우 지하철로 동지사대학 앞 이마데가와 역(今出川駅)에서 내려 자주 들렀다가 오는 곳이기도 했지만, 이번엔 한 반년 만엔가 가
내가 살고 있는 집 뒷편으로 10m정도를 가면, 비와꼬(琵琶湖) 호수에서 끌어온 소수(疏水)가 흐르고 있고, 그 소수를 따라서 1.8km의 산책로가 있다. 봄이면 산책길 양측으로 수령 100년 가까이 된 500그루 벚나무의 꽃이 만발하는 벚꽃구경의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6월초가 되면 이 곳에서 자생하는 반딧불이 날아다녀 반딧불 구경꾼들로 붐비고, 가을이면 이 길을 따라 긴카쿠지(銀閣寺), 호우넨인(法然院), 냐쿠오지신사(若王子神社), 에이칸도(永觀堂), 난젠지(南禪寺) 등의 사찰들과 어우러져 단풍으로 절경을 이룬다. 하여 최근에는
수행이란 마음속에끄나풀(정보원)을하나 두는 일이다 화나는 조짐을미리 알려주기때문에 사전에 화를원천봉쇄할 수 있다간화선은 화두를 가지고 하고 염불은 불보살의 명호를 마음에 지니고 하며 위빠사나는 사띠(알아차림)를 가지고 한다. 그리고 독서나 간경을 통해서 수행을 북돋아 주는 많은 정보를 얻는다.간화선은 신뢰하는 스님에게 화두를 받아 알 수 없는 의심을 지어가면서 선사의 의지를 간파하려고 애쓰는 중에 삼매에 이르고 선사의 법문을 들으며 지혜를 열어간다. 수행도 끝이 없고 깨달음도 끝이 없다.염불 수행자 역시 믿음이 가는 스님에게 관세음
‘나는 지금 행복한 것일까?’ 20대 초반 나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후가 더 문제였다. 사회에 첫발을 들인 대학생에게 주어진 자유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공부에 충실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시간을 내 맘대로 써도 괜찮았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잔소리 할 부모님도, 지도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마냥 주어진 자유가 좋았다. 그런데 그것이 양날의 검이라는
‘나는 지금 행복한 것일까?’‘행복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지금 나의 존재를 느끼고 상태를 파악하며 생각해 본다.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기준과 느끼는 정도는 다를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 정답은 없겠지만, 후자의 경우 더 쉽고 빠르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때론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쉽고 명확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이제 출입식관 수행 이야기로 진입하고자 한다. 왜 붓다께서는 초기에 사념처경을 설하시고 난 후, 수행에 관해서 말할 때는 왜 숨 쉬는 이야기부터 하셨을까? 물론 처음부터 붓다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체적으로 출입식 수행을 붓다께서 제일 먼저 가르쳤다고 알고 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뿐, 초기경전 수타니파타나 법구경에 호흡수행에 관해서 자세히 말한 것을 내가 과문한 탓인지 확실히는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그 어떤 경우라도 숨을 쉬어야 무슨 수행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옛날에 불국사 선원에 살 때 한 스님이
이제 근본 공부를 시작하고자 한다. 사염처경 중의 출입식관만을 골자로 해서 성립해 놓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는 호흡수행을 근간으로 하지만 우리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 행심반야 바라밀다시조견 오온 개공도 일체고액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이 점을 잘 감안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대 · 소승을 아우르는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경향에 휩쓸려서 이것만이 최고라고 하는 주의는 존재감은 드러낼 수는 있겠지만 참신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갈등 요인이 된다.반야심경에서 ‘나’라고 하는 건 오온이다. 오온은 색수상행식이다. 즉 몸과 마음이다. 빨리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스님이면 다 스님이고 신도면 다 신도인가? 우리 스스로 자문해 봐야한다. 수행에 앞서 우선 인성이라든지 사상, 의식이 바로서야 스님이요, 신도다. 우선 불교도는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3이 집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 말이 있다. 절에서는 선방 스님들이 높다. 부모님이 생계를 유지하며 자기 뒷바라지 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절 살림 사는 소임자 스님들이 수고가 많다는 것을 살필 줄도 모르면서 대학을 가고 선불장(選佛場)에서 부처로 뽑혀봐야 무슨
번뇌를 뿌리째 뽑는다는 것은 밖으로 사회참여를 하고 안으로 자기수행을 한다는 것인데 내가 바라는 사회참여란 대승적으로 화엄경의 보현행원품 십대원왕이다. 그걸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우주적 차원에서 이름이 다른 한 송이 꽃들이다. 이 꽃을 피워서 이 세상을 장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남이 어떻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자기 꽃만 잘 피우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참여란 대승적으로화엄경의 보현행원품 십대원왕이다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생활 ‘예경제불원’, 다른 사람을 칭찬해 주는
우리가 갖고 있는 괴로움의 근원적 뿌리를 빼내는 방법은 전통적인 수행으로 가능하다. 최근 서점에서 힐링과 명상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국부 치료하는 정도에 그친다. 마치 아이들이 쓴 약을 먹지 못해서 달달하게 만들어둔 약처럼 말이다. 그래서 당장에 먹기는 좋지만 뿌리 깊게 박힌 병을 치유하려면 결국 쓴 약을 먹어야 한다. 지금부터 이야기 할 부분은 입에 조금 쓸지도 모르겠지만, 병을 치유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불교를 공부하는 데도 세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불교 학자들이다. 차에 비
스님은 출가하고 도 닦는 것만으로 공양 받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재를 지낼 때도 스님은 높은 데 앉고, 재가 불자들이 와서 스님들께 공양을 올려야 본래의 의미에 맞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영가를 위에 모시고 스님은 밑에서 염불을 올리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이것은 유교적 관점에 따른 것이므로, 앞서 언급했듯 스님께 공양을 올리는 게 더 불교적이라 할 수 있다.스님은 부처님의 제자다. 재를 올리는 이유가 부처님께 잘 보여서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기 위함이라면 당연히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들께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재를
수행자의 질박한 생활을 보여주는 말이 삼의일발(三衣一鉢)이다. 이는 겉옷, 중간옷, 속옷 정도에 발우 하나를 더한 말이다. 미얀마는 나무로, 태국은 철로 되어있는 발우는 탁발하면서 먹기 위한 최소의 도구로서 삼의와 이 일발을 합친 것이 곧 스님들의 기본적인 재산이 된다. ‘삼의일발로 절인정하라’는 말이 있다. 삼의일발에 의지해 인정을 끊으라는 이 말은 도를 닦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수행은 실재참구라, 아무리 글로서 읽는다 한들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교재를 읽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
낡은 것을 좋아하지 말라.새로운 것에 매혹당하지도 말라.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잡아 끄는 것에 붙잡히지 말라.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현실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즐거운 일도 없고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생기지 않을 때가 찾아옵니다.사람마다 나름대로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대부분 그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벼텨 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이 좀 더 빨리 지나가게 하고 싶다면 무언가를 더 소유해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덜어 내기 위해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쉽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