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 눈길을 유혹했었는데, 문득 눈을 돌려 보니 어느새 매화가 조화롭다. 계절의 변화는 때로 스산함을 불러오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웅보전, 육화전, 만불전의 정초 관음예문 독송은 경내를 환희로 물들인다. 두 손 합장하고 열심히 독송하는 지혜월 도반의 모습이 맑다. 법회를 마친 후 햇살이 머무는 자리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눴다. “요즘 이른 시간 자리를 잡고 법회에 동참하는 모습이 예쁩니다.” 했더니 웃으며 “저희 집안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습관이 된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에 겨울비가 잦다 보니 예년과 달리 경내는 봄기운을 풍기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매월 음력 24일 관음재일은 월간 혜원 소식지 발송 작업과 불기 닦기 울력을 하는 날이다. 김수인행 보살님은 여느 날처럼 제일 먼저 자리 잡고서 혜원 사보 발송 작업을 하면서 미소를 띈 얼굴로 도반을 반긴다.좋은 기회가 생겨 초하루 법회를 마치고 나오시는 보살님과 함께 조용한 만불전에서 두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보살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혜원정사와 첫 인연을 맺게 되셨습니까?”“혜원정사와의 첫 인
병신년 동안거 해제가 삼 주 앞으로 다가왔다. 대중 수행문화의 전통을 잇는 '안거(安居)'는 스님들이 사찰 외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선방 내에서 수행하는 불교의 수행제도이다. 여름과 겨울 기간에 한 차례씩 90일간 이어지는 안거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재가 불자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고 신심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부산의 경우 2012년 부산지역 포교 사찰 모임인 전법도량이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 차원에서 재가안거를 기획한 이래 2014년 (사)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회장 심산스님, 이하 조
쌍계의 초록 숲이 빚어내는 신선한 공기와 자연의 숨결을 머금고 나온 차 싹, 이 맑은 기운들이 다인의 몸과 마음을 성성적적하게 하여 청량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산천초목 어느 것 하나 우주의 기운을 머금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차 공부를 ‘다도茶道’라 하는 것은 차의 이치를 잘 알아 수행과 학문 문화로서의 맑은 정신을 얻기 위함입니다. 차 공부를 통해 맑은 정신을 얻어 나와 관계된 모든 인연들과 더불어 어우러짐 속에서 기쁨을 나누고 서로 도우며 이익을 주기 때문입니다.‘차 한 잔 마시는데 뭐가 그리 까다로운 형식과 의례 예절까지
‘집밥’. 그 단어만 떠올려도 불현듯 코끝에는 구수한 된장 냄새가 맴돌고 눈 앞에는 뽀오얀 김이 나는 흰 쌀밥이 아른거린다. 들기름에 구워 바삭한 김 한 장을 흰 밥 위에 올리는 것을 상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언제부턴가 추억이 돼 버린 집밥, 그리움의 대상이 돼 버린 그 작은 밥상 하나가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는 아마도 이젠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졌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길 위의 드라이브가 익숙한 내게 차가 다니지 못하는 좁은 골목은 낯설다. 내비게이션이 일러 주지 않는 길을 차를 몰고 몇 번이나 뱅뱅 돌다가 결국 주차장
학의 둥지 위에 천진불 웃음소리 자라다선래 스님은 은사이신 동산 큰스님을 모시고 종단의 여러 직책을 거쳤다. 1981년, 법륜사 주지로 부임해 포교라는 새로운 임무를 떠안은 스님은 큰 고민 없이 어린이 포교에 뜻을 두었다. “신도가 말하기를 ‘스님, 애들이 유치원에 가서 뭘 배우는지 아멘아멘 이럽니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가만히 보니까 불교 유치원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가 싶더라고. 망설일 이유 없이 바로 불교 유치원 건립 불사를 시작했지.”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법륜유치원이 완공됐다. 불교 최초의 유치원이 탄생되는
음력 11월 그믐, 양력으로 따지면 한 해의 마지막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날 백양사 명부전을 찾았다. 문을 열기도 전에 왁자지껄, 밝은 목소리가 앞서 객을 반긴다. “옛날에 스님들께서 불기 닦을 때는 입도 다물고, 염불만 하면서 불기를 닦아야 업을 소멸한다고 하셨는데, 나이가 들고 하다보니까 이렇게 간만에 모여 이바구 하는 게 더 즐겁지 뭐예요” 불기를 닦기 시작한 지 35년, 최고 베테랑 문복선 회장님이 수줍은 인사를 건넨다. 불기회의 회원들은 최소 4년, 최장 35년, 평균 20년 이상 함께한 원년 멤버들이다. 특히 ‘불기회 5
겨울비가 내린 다음 날 경남 통영 용화사(주지 종묵스님)를 찾았다.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차로 겨우 10여 분 거리다. 버스를 타고 용화사광장 종점에 내려 걸어도 금방이다. 발걸음이 쉬우니 오가는 사람들로 어수선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산이었다. 고요히 운무를 두른 대설법전을 잠시 우러르다 경내로 들어서니 간밤에 온 비로 씻은 듯 영롱한 소망등이 객을 맞는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등이라니 보기에 더욱 곱다. 알사탕 같은 소망등 너머 용화사 보광전(普光殿)이 있다. 도지정 유형문화재로서 지방문화재인 금고, 명부전 시왕, 현왕탱화 등
결혼 후 취미를 찾다가 꽃을 만지기 시작했다는 보살님은 20여 년째 꽃에 푹 빠져 있다.“분홍꽃은 너무 눈이 부셔서 흰 꽃으로 보듬어 줘야 해” 가을 국화가 만개한 10월의 어느 날, 공양간은 ‘꽃간’으로 변해 있다. 이날 수업을 듣는 학생은 6명, 선생님은 성연화성 보살님이다.“꽃꽂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색이에요. 특히 법당에 올리는 꽃은 가장 화려해 보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다양한 꽃과 색은 다양한 사람들을 상징해요.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보듬으셨듯,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장엄을 이루는 모습을 꽃으로 보여 주
매주 금요일, 백양사에서는 도량을 화폭 삼아 화장세계가 펼쳐진다.올해 1기생을 맞이한 백양사 불화반 초보 화공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관세음보살의 수인 위에 채색을 하는 표정이 진지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작은 목소리로 정근을 하며 채색을 하는 화공도 있다.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공부와 다를바 없으므로, 마냥의 천진함을 내려놓고 예경의 마음이 갖춰짐은 당연하다.“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기록으로 전하는 것은 경전, 마음을 드러낸 것은 선, 그리고 미술과 건축, 음악, 예술을 통해
산 허리에 뿌리내린 기암괴석이 위용을 자랑하는 곳, 쌍계사 말사 남해 보리암(주지 능원)을 찾았다. 보리암은 원래 683년(신문왕 3)에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짓고 절 이름을 보광사라 하였다. 그 뒤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 연 것을 기뻐하며 산 전체에 비단을 덮는다는 뜻으로 산 이름을 ‘금산(錦山)’이라 지었다.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예로부터 한국의 3대 관음성지다. 그중에서도 보리암은 관음성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관세음보살을 주
도량 풍경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비가 오는 날에는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줄기의 청음이 반갑고, 맑은 날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누비는 풍경의 물고기가 눈에 들어온다. 진해 성흥사(회주 영환 스님)를 찾은 날, 이른 아침이라 도량엔 안개가 자욱하다. 희미한 지붕은 돛을 올린 배와 같고 처마 밑 용머리는 뱃머리와 닮았다. 안개 낀 도량에서 반야용선 만나는 행운을 얻은 건 비단 눈이 주는 착각 때문만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성흥사는 흥덕왕 8년에 무염 국사가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신라 흥덕왕 초년에 웅동과 제포 일대에 왜구가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연못가에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젊은 시절 한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학문에 힘쓰라는 주자의 권학문 첫 구절입니다. 차를 배운답시고 예쁜 다구, 예쁜 옷 입고 예쁘게 화장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솜씨, 맵시, 말씨를 예쁘게 하려면 마음의 양식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이 한 편의 시로 대신하고자 합니다.혜원정사 한국선다회의 들차회가 되면 임진실성 회장님은 다인에게 이러한 말씀을 늘 당부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