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중국 불교에 큰 스승이후 천 명의 운제사 대중 스님들은 원효 대사를 찾아 중국에서 해동으로 넘어왔고, 이곳에서 원효의 가르침을 받고 모두 성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름 붙은 산이 양산의 천성산千聖山이고, 판자를 던진 토굴은 척판암擲板庵이라 불리게 되었다. 구전으로 전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뚜렷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이 뒷받침되어 있다. 하나는 원효의 화쟁사상이 중국에 큰 영향을 미쳤고, ‘신라 원효’가 중국에서 큰 스승으로 추앙받았다는 점이다. 원효의 가르침이 중국에서 온 천 명의 대중을 성인으로
지난 3월 범어사 일요법회가 창립 17주년을 맞았다. 이날 열린 법석은 지난 한 해 동안 일요법회의 법상에 오른 법사 스님들의 법문을 한데 엮은 법문집을 발간해 법공양으로 회향하며, 재가 불자들이 이끄는 대중법회의 저력을 과시한 자리이기도 했다.범어사 일요법회는 2000년 1월 재가 불자들이 나서 수행과 포교를 이끌 모임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범어사 교수사인 홍선스님의 조언으로 탄생한 신행단체다. 그해 3월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포교사회 주관으로 일요법회를 창립, 매주 불교 경전을
혜원정사 대웅보전에서는 윤달 5월 생전예수재와 백중 인연 영가 천도재를 발원하는 지장경 100일 기도를 일심으로 정진하고 있다. 법당 창밖에는 오랜 가뭄 끝에 여름을 예고하듯 단비가 내린다. 육화전과 만불전에서도 지장경 독송에 여념이 없다. 불자님들은 저마다 조상님과 인연 영가께 예를 올리고는 공양간으로 향한다. 그 속에 밝은 모습의 조연심월 보살님과 경내를 걷다 신록 속에 앉았다. “연심월 법우님은 어떤 인연으로 혜원정사에 발 딛게 되셨나요?” 하고 거두절미하고 여쭸다.“1979년이었죠. 저는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이었
혜원정사에서는 매주 금요일이면 선다향실의 문이 열린다. 다인들이 펼치는 다화는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 상큼하다. 그 속에서 미소의 향기를 뿜으며 오손도손 정다운 다인들의 모습이 보인다.신미정(보안성), 신미주(자혜심) 자매와 함께 불도를 닦고 있는 김경희(금륜심), 김영희(성해월) 보살님은 두 자매의 올케다. 보안성과 자혜심 자매와 함께 네 명의 보살님이 옛적부터 이어온 혜원정사와의 인연은 매우 각별하다.보안성과 자혜심 자매는 박마니화 보살님의 두 딸로 엄마를 따라 일 년에 몇 번씩 절을 오간 것이 전부였다. 자매의 어머니는 큰며느
신록이 눈부신 여름, 연둣빛과 초록빛을 띠며 저마다 상생하여 함께 푸르다. 얼마 전 꽃의 시샘도 육근(六境, 경계)의 대상에서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저마다 하얀 저고리에 꽃 한 송이 달고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나눈다. 누가 봐도 자매의 향이 짙게 퍼지는, 두 손 꼭 잡고 법당으로 향하는 이대승화, 이홍로설 자매이다. 홍로설 도반의 큰언니인 대승화 보살님은 선방에서 수행한다. 둘째 언니 자연예 보살님은 선다향에서 차를 배우다 손주를 돌보게 되어 서울로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되었다. 홍로설
바랄 ‘망(望)’, 구름 ‘운(雲)’. 구름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남해 앞바다의 푸른 절경을 시작으로 굽이굽이 산길을 한참 타고 올라와 보니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아득한 높이에서 펼쳐지는 도량이 놀랍다.분명 남해 앞바다에서는 사찰까지 1킬로미터 남짓 남았다고 했는데 자동차로 한참을 올라서야 도량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직 신심 하나로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예경을 다 했을 무수한 수행자들이 떠올라 가쁜 숨을 쉬이 몰아쉴 수 없었다.희망을 안고 중생을 제도하는 산, 망운산의 망운사(주지 성각스님)에 올랐다.
동산 큰스님은 생전에 범어사의 수행 가풍은 물론이거니와 조계종의 정화에 일신을 헌사한 분이다. 그렇기에 뒤를 이어 제자들이 일군 동산 문도는 곧 범어사의 가풍이요, 조계종풍의 상징이다. 큰스님이 세연을 다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성한 스승의 목소리, 벼락같은 일갈은 후학들의 죽비가 되고 있다.“흥교야, 중노릇은 말이다….” 강진 백련사에서 스승의 곁에 바투어 앉은 제자는 스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평생 독신주의, 채식주의, 계율주의를 부르짖으며 한국 불교의
지난 3월 백양사(주지 명본스님) 신도 화합의 구심점이 되어 줄 백양사 신도회가 결성되었다. 신도회 결성과 함께 회장으로 추대된 이영화 신도회장은 통도사 신도회 부회장을 2년간 역임하고, 국제라이온스협회 활동 등 불교계와 지역사회에서 폭넓은 행보를 이어왔다. 신도회장직 맡기를 고사했던 이 회장은 “최근 백양사의 혁신적인 변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며 마음을 내어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백양사 인근으로 거처를 옮기며 백양사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집 근교의 가까운
“지금은 눈 감고도 예불문을 외우지만 처음부터 독실한 불자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불교에 귀 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이는 유일한 도반인 아내이지요.”아내를 따라 처음 도량에 발을 디딘 곳이 고성의 옥천사였다. 함께 절을 다니며 거사님이 신행생활을 시작한 후부터는 아내와 남편이 서로의 든든한 도반이 되어 주고 있다. 거사님은 사업성취 기도를 하다가 절에 오가는 횟수가 쌓일수록 불교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기도에도 올바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부지런히 아침저녁 예불에 동참했다. 예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한선정인 보살님이 들려주는 혜원정사와의 인연은 제1회 화엄산림법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버스를 타고 교대앞역을 지나던 중 혜원정사 화엄산림법회의 현수막을 보고 절을 찾게 되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혜원정사와의 인연은 참다운 깨달음으로 삶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생애 가장 큰 가피였다고.“저는 8남매의 맏이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시동생과 시누들을 공부시키며 결혼할 때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때 당시 피눈물 나는 시집살이를 참고, 지금의 나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처님 덕분입니다. 혜원정사와
‘연심기묘(緣尋機妙)’. 좋은 인연이 보다 좋은 인연을 찾으니 그 발전하는 모습이 실로 기묘하다.혜원정사 만불회 정보현심 보살님을 만나고 떠오른 사자성어다. 정보현심 보살님이 들려주는 혜원정사와의 인연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혜원정사 신도 중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혜원의 도량을 밟았습니다. 그런 저를 주지 스님께서 알아보시고는 한 통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의 양손이 부지런하면 그 속에서 많은 것이 샘물 솟듯 솟을 것이다.’ 그리고 스님을 친견했을 때
번뇌를 뿌리째 뽑는다는 것은 밖으로 사회참여를 하고 안으로 자기수행을 한다는 것인데 내가 바라는 사회참여란 대승적으로 화엄경의 보현행원품 십대원왕이다. 그걸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우주적 차원에서 이름이 다른 한 송이 꽃들이다. 이 꽃을 피워서 이 세상을 장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남이 어떻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자기 꽃만 잘 피우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참여란 대승적으로화엄경의 보현행원품 십대원왕이다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생활 ‘예경제불원’, 다른 사람을 칭찬해 주는
4월 29일 열린 2017 부산연등축제가 역대 최다 동참자를 끌어모으며 성황리에 회향했다. 부산시민공원으로 장소를 옮기고, 봉축법회와 제등행렬을 같은 날 선보인 것이 이번 성공에 주효한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이에 지난 24일 부산불교연합회 회관에서 부산불교연합회 임원진을 비롯하여 이번 연등축제에 참가한 여러 사찰과 단체의 실무진들이 자리한 가운데 실무자 평가회의를 가졌다. 동명불원, 대광명사, 부산파라미타청소년협회, 개인택시반야회, 개인택시불자회, 염불공양회 등 10여 개 사찰과 단체에서 2017 부산연등축제의 긍정적인
들어보셨나요? ‘영도할매방아깨비사업단’부산 영도구 청학동에 위치한 ‘부산영도시니어클럽 행복작업장’에서 앞치마를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분주하게 참기름과 볶음깨를 만든다. 작은 방앗간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넘쳐난다. 이곳은 ‘영도할매방아깨비사업단’에서 운영하는 방앗간이다. 2011년 7월부터 사회복지법인 혜원에서 위탁 운영하는 부산영도시니어클럽과 함께 시작한 이 사업은 지금 부산영도시니어클럽의 간판이 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4년 연속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우수사업 지정이 사업은 시작한지 이듬해인
우리가 갖고 있는 괴로움의 근원적 뿌리를 빼내는 방법은 전통적인 수행으로 가능하다. 최근 서점에서 힐링과 명상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국부 치료하는 정도에 그친다. 마치 아이들이 쓴 약을 먹지 못해서 달달하게 만들어둔 약처럼 말이다. 그래서 당장에 먹기는 좋지만 뿌리 깊게 박힌 병을 치유하려면 결국 쓴 약을 먹어야 한다. 지금부터 이야기 할 부분은 입에 조금 쓸지도 모르겠지만, 병을 치유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불교를 공부하는 데도 세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불교 학자들이다. 차에 비
스님은 출가하고 도 닦는 것만으로 공양 받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재를 지낼 때도 스님은 높은 데 앉고, 재가 불자들이 와서 스님들께 공양을 올려야 본래의 의미에 맞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영가를 위에 모시고 스님은 밑에서 염불을 올리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이것은 유교적 관점에 따른 것이므로, 앞서 언급했듯 스님께 공양을 올리는 게 더 불교적이라 할 수 있다.스님은 부처님의 제자다. 재를 올리는 이유가 부처님께 잘 보여서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기 위함이라면 당연히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들께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재를
우리나라 화엄제일 도량 범어사에서 여러분들에게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게 된 것은 과거생의 큰 인연의 소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인연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뜻에서 오늘 여러분께 나누어 드린 대방광불화엄경 1권 사경책의 제일 뒤 표지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찍힌 도장은 원효암 우물 속에서 건져 냈는데, 신라 시대의 도장이라고 합니다. 국가 지정과는 별개로, 1338년 역사를 지닌 범어사에서 제1 보물로 지정한 도장입니다. 이 도장은 범어사를 창건하신 의상 스님의 도반인 원효 스님이 늘 사용하시던 도장입니다. “장대교망張大敎網
화엄경은 다른 경전보다 분량도 많고 또한 그 설법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여 대승경전 중 최고이고 최상승 법문 중 가장 최상승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그야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교 강원에서도 화엄경을 몇 년간 공부하는데 이 짧은 시간에 이를 설명하려니 벅찹니다.부처님은 임금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수행 끝에 납월 8일에 성도를 이루시고 펼치신 최초의 설법이 화엄경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서 다섯 비구에게 사제법을 설하시기 전에 마가다국 부다가야에서 성불하셨습니다
저는 불자님들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여법하게 살 때 행복하고 편안하지 않겠냐고 늘 말씀드립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로운 것은 각자의 업보, 마음 때문이니 남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탓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하고 질투하고 과욕을 일으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불자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실천이 없다면 어떠한 결과가 오겠습니까? 이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시길 바랍니다.정초에는 참회기도를 많이 올립니다. 지난해의 잘못을 참회하고 맑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 스님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선 공부현화사 주지 몽산 스님은 전국 각지의 선방에 주석하며 선 공부에 매진했다. 스님이 선 공부에 뜻을 세우게 된 데는 은사이신 동산 큰스님과의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옛 시절, 형편이 부유하지 않았던 청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낮에는 절의 살림을 거들고 저녁에는 공부를 하곤 했다. 스님도 강진의 백련사에 올라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는 불교정화운동의 깃발을 올린 동산 스님이 한국 불교의 청정 가풍을 되살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다.“큰스님께서는 백련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