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불전에서 자비도량참법기도에 동참했던 이원명성 법우님께 눈인사를 건네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법회를 마치고 보살님과 함께 절 뒤뜰에서 따뜻한 햇볕을 등지고 앉았다. 잠시 염주를 놓고 지난날의 신행 발자취를 회상하는 보살님의 얼굴이 꽤 상기된 표정이다.“젊은 사람이 예쁘지, 늙은이 사진 찍어서 뭣하게. 보기 싫어.”라며 연거푸 인터뷰를 거절하셨지만, 보살님의 가방에 달린 작은 목탁이 귀엽다며 화제를 돌리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풀렸다.“아이고, 이거 큰스님이 직접 달아 주셨어. 이 가방에 달고 다니라고.” 하며 웃으신다.
“심플한 삶은 아름답다. 심플한 삶은 적게 소유하는 대신 사물의 본질과 핵심으로 통한다. 심플한 삶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너무 많이 소유하려는 것을 멈추자. 그러면 자신을 돌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필요한 물건보다 더 많은 소유하는 것은 곧 새로운 불행을 짊어지는 것이다.”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중에서)요즘 심플한 삶에 대한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단순한 것의 가치에 비중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반하여 정신문명이 퇴보해가는 흐름 속에서 반가운
진감혜소 국사가 절을 세우기 위해 지리산을 찾았다. 화개에 다다랐을 때 나무 기러기 세 마리를 만들어 하늘에 날려보냈다. 기러기 한 마리는 국사암 밑 목압木鴨마을에, 다른 한 마리는 쌍계사 터에, 또 한 마리는 현재의 국사암 터에 내려앉았다. 이후 진감 국사는 국사암을 중창하고 쌍계사를 창건하였다. 국사암은 쌍계사의 부속 암자이기도 하지만, 연대로 치자면 오히려 쌍계사보다 앞선다. 진감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찾는 대중들이 늘어났고 더 넓은 도량이 필요하게 되면서 쌍계사 창건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다.국사암 입구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도로통행은 일반적으로 오른쪽(우측) 통행이 원칙이다. 따라서 도로는 어디를 가든 우측통행일 거라는 선입관을 가지게 된다. 물론 세계에는 이처럼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한 교통체계를 도입한 국가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 태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비롯한 과거의 혹은 현재 영연방국가들의 여러 나라에서는 교통체계가 좌측통행을 원칙으로 하여 도입되어 있다.그럼, 왜 좌측통행이 되었을까? 영국인들에게 물으면 영국사람들은 왼손잡이가 많아서 일거라고 하기도 하고, 일본인에게 물으면 (일본인은 원래 오른손잡이
현대 일본의 환락가의 대표주자로 동경의 긴자(銀座)거리와 교토의 기온(祇園)거리를 꼽는다. 긴자거리가 현대식 유흥가인 반면 교토의 기온거리는 하얀 분칠을 한 채 기모노(일본의 민족의상)를 입은 전통적인 일본기생이 출몰하는 술집거리로 유명하다.그런데 교토의 게이샤는 버블경제 절정기에만 하더라도 그 지망생들이 많았고 그들은 게이샤라는 직업에 대해 상당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지원하였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장래희망 중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였다. 가장 일반적인 패턴이 소학교(=초등학교) 중퇴 혹은 졸업 후 견습생으로
『불을 타오르게 하는 것은 장작 사이의 공간 숨 쉴 공간이다. 너무 많은 좋은 것 너무 많은 장작을 바싹 붙여 쌓는 것은 오히려 불을 꺼뜨릴 수도 있다. 한 바가지의 물이 거의 틀림없이 불을 꺼뜨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러므로 불을 피울 때는 나무뿐 아니라 나무 사이의 공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주디 브라운(Judy Brown)쉰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이자 중요한 가치이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활동하며 주변과 교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며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
명상(瞑想, Meditation)은 나에게 늘 큰 힘이 되어 준다. 평소에는 그 필요성을 잘 모르다가 힘이 들 때 더 찾게 되어서 일까. 이젠 나의 힘든 순간을 늘 함께 해주는 벗이 되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마음은 우울하고 짜증이 나고 몸은 힘들고 지치게 된다. 이때 명상은 그 모든 문제를 사라지게 해준다. 명상을 배우기 전에 명상은 아주 어렵고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나름대로의 휴식법과 운동과 독서 등 여러 가지 여가생활로써 공부에 지치고 사람들에 치인 몸과 마음을 극복해 나갔다.나중
얼마 전에 한국의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친구와 그의 제자들이 교토를 들렀다. 그 친구를 비롯한 일행이 시를 쓰거나 예술을 하면서도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도이기도 하여 다른 관광명소는 제쳐두고 ‘철학의 길(哲学の道)’을 들러 고쇼(御所=왕궁) 맞은 편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구내에 ‘윤동주 시비’를 보러 갔다. 타 대학에 강의를 가거나 할 경우 지하철로 동지사대학 앞 이마데가와 역(今出川駅)에서 내려 자주 들렀다가 오는 곳이기도 했지만, 이번엔 한 반년 만엔가 가
내가 살고 있는 집 뒷편으로 10m정도를 가면, 비와꼬(琵琶湖) 호수에서 끌어온 소수(疏水)가 흐르고 있고, 그 소수를 따라서 1.8km의 산책로가 있다. 봄이면 산책길 양측으로 수령 100년 가까이 된 500그루 벚나무의 꽃이 만발하는 벚꽃구경의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6월초가 되면 이 곳에서 자생하는 반딧불이 날아다녀 반딧불 구경꾼들로 붐비고, 가을이면 이 길을 따라 긴카쿠지(銀閣寺), 호우넨인(法然院), 냐쿠오지신사(若王子神社), 에이칸도(永觀堂), 난젠지(南禪寺) 등의 사찰들과 어우러져 단풍으로 절경을 이룬다. 하여 최근에는
수행이란 마음속에끄나풀(정보원)을하나 두는 일이다 화나는 조짐을미리 알려주기때문에 사전에 화를원천봉쇄할 수 있다간화선은 화두를 가지고 하고 염불은 불보살의 명호를 마음에 지니고 하며 위빠사나는 사띠(알아차림)를 가지고 한다. 그리고 독서나 간경을 통해서 수행을 북돋아 주는 많은 정보를 얻는다.간화선은 신뢰하는 스님에게 화두를 받아 알 수 없는 의심을 지어가면서 선사의 의지를 간파하려고 애쓰는 중에 삼매에 이르고 선사의 법문을 들으며 지혜를 열어간다. 수행도 끝이 없고 깨달음도 끝이 없다.염불 수행자 역시 믿음이 가는 스님에게 관세음
‘나는 지금 행복한 것일까?’ 20대 초반 나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후가 더 문제였다. 사회에 첫발을 들인 대학생에게 주어진 자유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공부에 충실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시간을 내 맘대로 써도 괜찮았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잔소리 할 부모님도, 지도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마냥 주어진 자유가 좋았다. 그런데 그것이 양날의 검이라는
‘나는 지금 행복한 것일까?’‘행복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지금 나의 존재를 느끼고 상태를 파악하며 생각해 본다.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기준과 느끼는 정도는 다를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 정답은 없겠지만, 후자의 경우 더 쉽고 빠르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때론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쉽고 명확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이제 출입식관 수행 이야기로 진입하고자 한다. 왜 붓다께서는 초기에 사념처경을 설하시고 난 후, 수행에 관해서 말할 때는 왜 숨 쉬는 이야기부터 하셨을까? 물론 처음부터 붓다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체적으로 출입식 수행을 붓다께서 제일 먼저 가르쳤다고 알고 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뿐, 초기경전 수타니파타나 법구경에 호흡수행에 관해서 자세히 말한 것을 내가 과문한 탓인지 확실히는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그 어떤 경우라도 숨을 쉬어야 무슨 수행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옛날에 불국사 선원에 살 때 한 스님이
이제 근본 공부를 시작하고자 한다. 사염처경 중의 출입식관만을 골자로 해서 성립해 놓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는 호흡수행을 근간으로 하지만 우리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 행심반야 바라밀다시조견 오온 개공도 일체고액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이 점을 잘 감안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대 · 소승을 아우르는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경향에 휩쓸려서 이것만이 최고라고 하는 주의는 존재감은 드러낼 수는 있겠지만 참신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갈등 요인이 된다.반야심경에서 ‘나’라고 하는 건 오온이다. 오온은 색수상행식이다. 즉 몸과 마음이다. 빨리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스님이면 다 스님이고 신도면 다 신도인가? 우리 스스로 자문해 봐야한다. 수행에 앞서 우선 인성이라든지 사상, 의식이 바로서야 스님이요, 신도다. 우선 불교도는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3이 집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 말이 있다. 절에서는 선방 스님들이 높다. 부모님이 생계를 유지하며 자기 뒷바라지 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절 살림 사는 소임자 스님들이 수고가 많다는 것을 살필 줄도 모르면서 대학을 가고 선불장(選佛場)에서 부처로 뽑혀봐야 무슨
불기 2561년 부산 미타선원 금강경 산림법회 2재 법문행복禪수행학교 교장 월암스님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 살아가는 중생의 살림살이가 꿈과 같고 헛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라.이것이 금강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러주는 부처님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꿈 가운데 꿈을 꾸고 꿈을 해몽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사공스님을 찾아와서 묻기를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게
꺼지지 않는 신심의 불씨백중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법당에는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일반 사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백룡암에서는 귀하디 귀한 작품 이라 한다. 김해 마을에서 도량까지는 급경사와 비탈길이 이어져 신도들조차 법회에 참석하려면 절에서 스님이 내려오시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걸어서 오르내리면 인대가 늘어날 정도라고 하니 그조차 엄두를 내기가 힘들다. 부처님 전에 다다르기까지 지나야 할 길이 여간 험난한 것이 아니다. 주법당과 대웅전 뒤편의 산신각, 요사채가 전부인 소담한 도량은 장마철이면 지
자비, 불교가 지니는 인격의 품위불교는 ‘사랑 자慈’, ‘슬플 비悲’ 자를 써서 ‘자비’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는 참된 어머니의 모성을 닮았다. 관세음 보살이 중생의 어머니로서 굽어살피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제 자식이 어디에 있더라도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남에게 제대로 대접은 받는지 사랑을 받는지 항상 걱정한다. 어머니는 자식이 백 살이 되어도 평생토록 연민하여 마음에서 놓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어머니의 모성을 곧 자비라고 말한다. 그래서 불교는 가장 이성적인 인격의 품위를 지닌다.
불기 2561년 부산 미타선원 금강경 산림법회 초재 법문 미타선원 주지 종호스님 성철스님께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셨습니다. 산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도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은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물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 중생과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앞으로 많이 살면 20년을 더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 후에 제 모습이 지금과 같을까요? 아마 다를 것입니다. 물을 담는 컵도 겉으로 보기에는 견고한 것 같지만 깨고 깨고 보면 컵을 구성하고 있던 유리가 나뉘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햇살이 따가운 날 육화전 앞 연분홍 연꽃이 하나 둘 셋 차례대로 피고 지고를 한다. 대웅보전, 육화전, 만불전에서는 생전예수재와 백중을 맞아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면하고, 깨닫고 성장해 나가는 바른 불자가 되기 위해 일심으로 동참한 지장경 100일 독송 기도가 한창이다.마침 활짝 핀 연꽃에 빠져 미소를 머금은 만불약사회 보안인 회장님의 모습이 밝아서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셔터를 찰칵찰칵 몇 번을 눌렀다. 수줍게 웃으며 “이쁘게 나와요?” 하고 물으시다 조심스럽게 덧붙이신다. “연꽃이 너무 이뻐서 감히 찍어도 되려나&h